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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자료: 신령과 진정의 예배

2006.09.16 15:19

윤사무엘 Views:5342 Recommend:229

 

  “신령과 진정의 예배 -구약성서 중심으로”

                                        윤사무엘 목사 (교수, 구약학, 예슈아 신학대학원)

      1. 들어가는 말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당신 평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여야 합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순간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순간입니다. 예배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최고의 행복이요,가치요,극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예배를 회복하고 존중히 여기십시오

       구약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인생으로부터 바른 예배를 받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 보면 예배를 '아바드'(‘avad)라고 하는데 섬기고 봉사한다는 뜻이다. 또 '사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굴복하며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다. 구약성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예배의 모습을 정리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그를 찬양하며, 그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귀담아 듣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며,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다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배란 곧 제사(sacrifice)인데,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양, 염소, 소, 비둘기를 바치는 희생이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예배만큼 중요한 가르침이 없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예배의 순서와 내용, 예배의 준비와 뒷처리, 예배의 시간과 장소, 예배의 목적과 정신 등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가르치고 있다.  바른 예배,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를 자세히 가르치며,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이지만 드릴 때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려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 이외 다른 신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성서는 예배의 지침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구약성서에서 보여주는 예배에 대한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예배에 대한 이해에 기여한 초기의 학자는 거의 신구약 성서학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1960년대에 예배의 성서적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 신구약 학계에서는 이 주제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폰 라트(G. von Rad)1),W. 해릴슨(Walter Harrelson)2)을 비롯하여 로우리(H. H. Rowley),3) 모빙켈(Sigmund Mowinckel),4) 한스 크라우스 (Hans-Joachim Kraus),5)  드보(Roland de Vaux),6) 쿨만(Oscar Cullman),7) 폰 알멘(J. J. von Allmen)8)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중 스칸디나비아 학파에서 시편의 제의적 연구를 많이 하여 이 방면에 공헌을 하였다. 제사문서(P)의 체계적인 연구도 예배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구약에서는 화해를 위한 희생 제사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화해를 기념하는 성찬 예식이 예배의 근원적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예배는 모두 화해(reconciliat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짐승의 희생을 통해 죄사함을 받거나 (레1:5, 삼하24:24)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고후5:17-19)   예배는 화해를 이루시는 분에게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 구약시대의 예배

        이스라엘은 예배공동체(worshipping community)였다. 모빙켈의 주장처럼 성서(Text)의 상황(Sitz im Leben)은 예배(Context)이다.9)  구약성서에서는 우상숭배의 근절과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 고대근동 고고학의 발달로 팔레스타인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제의 장소가 발견되고 있다.  그 대부분이 우상 숭배의 제단이다. 어느 촌락이나 도시(state-city)이건 한가운데 신전(shrine)이 있었다. 구약 성서에서 예배에 관해서 최초의 언급은 “야웨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에서 성소(聖所)의 개념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 즉 예배 장소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기 위해 택한 곳이라고 나타내고 있다 (출 2:24, 신12:5, 12:21, 14:23-24, 왕상8:15, 30).  고대근동지방의 종교(바알 종교, 가나안 토속종교, 바벨종교, 이집트종교 등)에서는 의식만 잘 갖추면 신들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믿었다.10) 예배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더 신경을 썼다. 이에 비해 구약성서의 예배자는 하나님과 체결한 계약의 약속들을 잘 지키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진정의 예배를 드리기를 힘썼다.

       

       2-1  아벨의 예배

       구약성서에서 최초의 예배가 소개되어 있는 창세기 4장 3-7절을 살펴보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웨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태생과 그 기름으로 드렸는데 결과는 “야웨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 하신지라”고 성서는 기록한다(창 4:4-5). 당시에는 특정한 예배법도 없었고 기준도 없는 때였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법(출애굽기 25-31장, 레위기1-27장)을 계시받기 전이기 때문에 제물의 종류나 제사의 순서 등이 문제가 되지 아니했다. 가인은 농산물을 드려서 받지 아니했고 아벨은 양을 드려서 피의 제사여서 흠향(歆饗)했다는 해석은 문제가 많다.11) 문제는 제사를 드리는 자의 삶의 태도과 인격의 모습이 하나님께 열납(悅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이유는 창세기 4:6-7에 나온다.  이 구절 속에서 가인은 평소 선을 행하지 아니했고 죄악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예배의 갱신을 이야기할 때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점이다. 예배의 순서와 내용에 앞서 먼저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일이 중요하다.12)  원문에서 죄(תאטח)라는 단어가 구약성서에서 처음 나온다.  이 단어는 구약에 124번 나오는데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는 말의 뜻은 “짐승이 공격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듯이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는 실체” (at the door of Cain sin is a crouching beast)가 죄라는 뜻이다.13)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관계를 파괴하며 공동체를 해치는 실체이다. 이런 죄성을 가지고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신다.14)  죄의 소원은 있지만 이 죄를 다스려야 할 책임이 예배자에게 있는 것이다.


         2-2  성막전의 예배

        온통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을(貫盈) 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는 경건한 생활을 한다. 노아가 대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 야웨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歆饗)하셨다고 했다 (창 9:20-21). 이 짐승과 새를 번제로 드린 예배 후 유명한 무지개의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םלוע תירב everlasting covenant)을 기억하리라.” (창 9:16)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 중 9대 손으로 데라가 태어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가보니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 ( 창 12:1-5)  세겜은 가나안 땅의 중앙부에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하시니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야웨를 위하여 단을 쌓았고, 이어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인 중간지점에서 다시 야웨를 위하여 단을 쌓고 야웨의 이름을 불렀다. (창 12:7-8) 첫 족장(Patriarch)이 된 아브람의 예배생활을 잘 보여준다. 이집트에 가서 바로에게 창피를 당하고 나서 아브람과 그 일행이 가나안에 다시 돌아온 곳이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곳이다 (창 13:3-4).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며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리아 산위의 사건(창 22:1-14)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가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진 이삭의 모습과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열납 되는 예배자의 모습이다.


    2-3.  성막예배

  출애굽의 목적은 광야에 나가 히브리인의 조상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광야에서 율법을 받게 되었고 규정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것이 성막예배 였다.  구약의 제사법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계시한 말씀인 율법에서 규정되고 있다.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 (레 7:37)고 예배의 종류부터 성막, 제사장옷, 제사의 순서와 질서, 내용을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15)  이스라엘의 제사법이 주변의 다른 셈족의 제의와 구별되는 점은 짐승을 제물로 드릴 때에 그 제물 짐승을 부분적으로나 온전히 제단 위에서 살과 바치는 화제나 완전 번제(올라 Olah)라는 점이다.16) 이런 제도는 메소포타미아나 아라비아나 이집트에는 없는 이스라엘만이 가지는 독특한 제사법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에 정착하면서 제물을 제단에 부분적으로나 온전히 살라 바치는 올라(‘Olah)와 제바흐(제물 Zebach)풍습을 가나안 원주민으로부터 이어받고 이것들을 고대의 피와 관련된 제사의식들과 결합시켜 그 후 독립적으로 계속 제사법이 발전해 갔을 것이라”고 롤랑 드보는 주장한다.17) 구약학의 비평학을 연 벨하우젠(J. Wellhausen)은 이스라엘의 예배의 역사를 세 기간으로 나누었다.18) (1) 1기는 주전 621년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이며, 이 기간에는 제의 행사에 대해 별로 꺼려하거나 관심을 두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번제와 화목제를 주로 바쳤는데 누구에게 제물을 바치느냐가 항상 관심사였다는 것이다  (2) 요시야의 종교개혁이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기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에 중요한 변화는 제단의 중앙성소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지방의 성소들과 산당의 성소들에 다양한 제의 풍속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는 예배제도가 정착되고 단일화되었다는 것이다. (3) 3기간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부터였다. 이 때 새로운 풍조가 나타났는데 오염된 제사법의 난무였다. 이에 에스겔 중심으로 오염된 풍조를 쇄신하고 재건된 성전에서 엄수해야 할 제의 행사를 묘사하고, 속죄의 개념을 절실하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강조했다.19)  포로시대 동안에 제사장들이 제사문서(Priestly writings, 혹은 P자료)를 정리하면서 제사제도가 정립이 되었고, 제2성전이 건립되고 80년 후인 450년 무렵에 에스라가 개혁을 완성하여 제사 의식법이 확정되어 신약시대까지 계속된 것이라는 것이다.20) 그의 의견은 후에 다소 수정이 되었지만 예배제도가 발달되어 온 기본이론은 아직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2-4. 성전예배

   이스라엘 왕국이 안정되었을 때 성전이 완성됨으로 성전예배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솔로몬이 즉위하고 4년(출애굽한지 480년 만에, 왕상 6:1)만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7년간(주전 962-955년) 공사하여 (왕상 6:38) 완성하였다. 이를 “솔로몬의 성전” 혹은 “제1성전”이라 부른다.  역대하 7;1-3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봉헌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니 하늘로부터 불이 제단에 있는 모든 번제물을 태운 후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을 채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성전은 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파괴될 때까지 370년 동안 존속해 왔었다. 사독계 제사장들이 항상 예배를 집전했다.21)  로울리(H. H. Rowley)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중요목적은 왕실의 성소(royal sanctuary)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22) 예언자 가운데도 아예 왕실소속 예언자가 있었으며 (예, 시드기야, 왕상 22:24), 제사장 가운데도 사독계열 제사장은 왕실과 밀접히 관계되어 성전예배를 이끌어 나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성전이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처소가 되었다.

    성전예배가 자기를 잡을 때 즈음에 차츰 예배의 형식만 남게 되고 예배의 내용과 본질은 망각되어 갔다. 이 때 예언자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게 되어 예배 갱신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대체로 예언운동은 반제의적(Anti-cultic) 운동으로 이해되어진다. 예언자들은 왕정시대에 타락하고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특히 주전 8세기에 활약한 예언자들 중심으로 예배갱신 운동이 강하게 전개되었다. 아모스(주전 750년경)는 날로 심각해져 가는 이스라엘의 그릇된 예배의식을 역설적으로 꾸짖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의 예배를 드리면서도 가장 경건한 척하며 잘 믿는 척하는 무리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암 4:4-5).  호세야(주전745년경)도 타락한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을 지적하면서 ‘너희들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보다는 각종 포도주와 음행 등 인간의 정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호 14:1-2) 이사야(주전 약 742-689년)도 거짓예배를 고발하고 있다. (사 1:10-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사 1:17)는 것이다.  이사야에 의하면 잘못된 삶을 회개하지 않은 채 드려지는 기도, 찬양, 헌금을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입술로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는 공의, 인자(Hesed, 한결같은 사랑), 겸손임을 천명한다.(미가 6:6-8)  예레미야도 예배의 생활화를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진실된 회개가 있는 예배이다. (시 51:16-19).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쉐마, 신 6:5-7)으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제3이사야 (520년경)는 진실된 예배 회복을 예고하고 있다. (사 66:22-23).

     2-5.  회당예배

    기도, 성경낭독과 해설(exposition), 찬미, 교제 등으로 구성된 회당예배는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해 발전된 것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명(주전 587/6)후 대제사장, 부제사장, 세 명의 수문장들을 비롯하여 성전의 고위관리들이 모두 포로로 붙잡혀 립나에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처형당했다 (왕하 25:18-21 = 렘 52:24-27, 39:6).23) 다행히도 에스겔은 1차 포로시(597년)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는 중 소명을 받아(592년, 겔 1:1-3) 20여 년 동안 제사장 출신의 예언자 역할을 감당하였고, 그의 집안인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과 보조인원들은 포로생활을 하였다. 솔로몬 등극시 축출되었던 아비아달 제사장의 지도층들도 다수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것이다.24) 포로생활 중 제사장과 일반 레위인들의 차별이 굳어졌다. 남은 제사장들도 성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이 주로 율법, 역사서, 예언서등 문헌들을 정리 보관하는데 집중하거나 농사했을 것이다 (참고, 왕하 24:14, 25:12).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할 때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날마다 모여서 찬양, 기도, 말씀묵상을 한 것이 회당(Synagogue)예배의 시초가 된다.25) 시편 137:1-6에서 바벨론 포로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국을 위한 기도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생활을 힘쓴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예배는 희생의 번제단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회당은 희생의 제단이 없는 예배의 형태가 발전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경건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낭독하고 묵상하며 강론을 하기 시작했고, 조국을 위해 애국적인 기도를 하며, 시온의 찬미를 수시로 드렸다. 회당에서 찬양을 위해서는 옛 시편들이 사용되어졌으며, 또 새로운 시편들이 많이 만들어 진 것 같다. 기도는 주로 암송(recitation)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주후 4, 5세기경에 문서로 남긴 기도문이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기도문이 바로 18기도문 (Shemoneh ‘Esreh)이다. 이 기도문에서는 영적인 각성을 위한 기도, 빵을 주신 감사기도, 창조에 관한 기도, 중보기도, 고백기도, 병자를 위한 기도, 송영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 쉐마암송(신6:4-9, Keriat Shema')을 꼭 하였고26), 매일 기도문을 개발하여 낭송했고, 매일, 매주, 매년 읽어야 하는 성경을 봉독했다. 저들은 세계 어디에 흩어지더라도 매일 성서의 세 구절(신 6:4-9, 11:13-21, 민 15:37-41)을 두 번씩 낭송할 의무가 있다. 십계명도 자주 암송해야 하고 축복기도(Benediction)27)도 발전되었다.

   2-6  제 2 성전시대 예배

시편은 포로기 후의 이스라엘 공동체(the post-exilic community of Israel)의 산물이다. 제2성전의 찬송가(Hymnbook)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편은 이스라엘 예배공동체의 진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28) 시편 안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내용이 수록된 예배 특히 역대기서(the Chronicler)에서 예배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법궤를 성전으로 옮길 때,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나팔 부는 제사장 120명과 함께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며 감사하였다. 관현악의 반주로 합창이 장엄하게 울러 퍼지는데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였다.(대하 5:11-13). 이처럼 패트릭 (Millar Patrick)이 지적한대로 “예배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the offering of praise to God)이며 그 외의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고29) 한 대로 성전예배는 음악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주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한 후 80년 후 느헤미야가 유대총독으로 부임하여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했다 (6월 25일, 느 6:15). 여호와께 헌신하기 위하여 수문 앞 광장에 모여(로쉬 하사나, 7월 1일) 율법책을 낭독하며 해석하고, 율법이 정한 초막절을 크게 지켰다.(느 12:36-39, 12:43)고 전해준다. 예배의 축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구절이다.

     3.  나가는 말

이처럼 구약의 예배는 한마디로 희생(Sacrifice)제사였다. 산 제물을 번제단 앞에 죽여서 하나님께 향기나는 제사를 드린다. 이미 죽은 제물을 드리는 법은 없다. 어떤 것이라도 이미 죽은 것은 제물이 될 수 없다. 또한 병든 것도 안되며 상처가 났거나 비정상적인 지체가 있어도 안된다. 심지어 내장이 건강한지 점검하기 위해 예배일 3일전에 가지고 나와서 3일 동안 변이 건강한지 여부를 살피고 나서 이상이 없으면 제물용으로 채택되었다. 양, 염소, 소의 피를 흘려 시은좌에 뿌리고 번제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에 남은 피를 쏟아 붓고, 짐승의 고기를 태워 그 향내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사함 받는다. 희생제사를 통해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죄사함을 받은 후 기쁨과 감사로 축제를 드린다. 아침의 번제, 저녁의 소제로 매일 제사를 드리며,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는 수시로 드렸다. 안식일과 정한 절기에 드리는 예배가 있었다.  이런 희생의 제사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The Lord's Table)의 원형이 되었다.



<각주> (end notes)

1) G. von Rad, Essays on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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