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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닉 히브리서강해

메시아닉 히브리서강해 "흘러 떠내려갈까"

2008.07.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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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Dr. Stephen Y. Jun, Th.D 전윤근박사
메시아닉 히브리서강해
3강:흘러 떠내려갈까
히브리서 2:1-18(#3)

서론.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히2:1)

이 말씀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다섯가지 경고의 말씀중 첫번째로 주어진 권면의 말씀이다.
이 경고의 목적은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교회를 향해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위해 주어졌으며 가면 갈수록 그 어조가 강하게 나타나고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말씀듣는 태도에 대한 다섯가지 경고는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2: 1)로 시작하여
“말씀하신 자를 거역하지 거역하지 말라” (12: 14-29)로 점진적으로 발전되고있다.

이 경고의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결국 히브리서의 경고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성도들로하여금 주님이 재림하실 때 휴거의 영광에 참여하는 영적 열매를 맺기위해 주어진 말씀이므로 우리들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2: 10)


I.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영적 위험(히2: 2-4)

성도들이 말씀을 등한히 여기면 성도들이 받은 큰 구원도 자연히 등한히 여기게된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2:3)

우리가 여기에서 큰 구원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조심해야할 점은,
큰 구원을 버리는 것(not rejecting)이 아니라
큰 구원을 거절하는 것(not refusing)도 아니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but neglecting)는 점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권면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 생활을 더 잘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또 히브리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위에 굳건하게 설 것에 대하여 설명할 때에 “영혼의 닻”이란 말을 사용하고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6: 19)

마지막 때에 살고있는 성도들의 영적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태도이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유일한 영적 쏘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때의 교회는 유일한 영적 쏘스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만족하지 않고 그 쏘스를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배합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려는 일에 앞을 다투고있지 않은가?

마지막 시대에 교회의 부흥은 참으로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유일한 영적 쏘스인 성경말씀의 절대 진리를 희석시킴으로 등한히 여기는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하지 못한다.
아니 그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교회에 늘 강조하신 권면의 말씀은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이다.

또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는 7년환난의 진노를 피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3:10)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말씀에서 흘러 떠내려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리고 그때 주신 말씀은 천사를 통해 주셨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히2: 2)

그러나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주셨다.
“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1:2)
그래서 교회가 말씀을 등한히 여기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에 나오는 “범죄함”(transgression) 이란 자기가 저지른 잘못한 죄 (sins of commission) 즉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는 죄 를 말하고 있으며,
“순종치 아니함” (disobedience) 이란 하라는 것을 순종치 아니한 죄(sins of omission) 즉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죄로 구별된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의 죄는 불신자들의 죄보다 더 악하다.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교회는 은혜가운데 있다.
그래서 율법가운데 살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훨씬 더 잘 피할수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있는 로마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피하라고 경고하고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1: 16-20)

결국 복음의 선언은 성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마지막 때에 살고있는 성도들은 칠년환난이라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공중으로 들림받아야한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 가장 필요한 영적 축복이다.

물론 교회가 복음을 통해서 영육간에 건강하고 물질축복을 통해 선교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는 이 땅에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겨서는 안된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 은혜를 베풀고계신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2: 3,4)


II.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예수님 (히 2: 5-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에서 떠내려가면 예수님으로부터 떠내려가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으로 되는 성육신의 사건은 어떻게 보면 열등하게 보일 수있다.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이 인간의 제한적인 육신으로 강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성육신의 방법은 그렇지 않다.

히브리서 2장은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설명하고있다
즉 히브리 백성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떠내려가지 말라는 뜻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이유를 설명하고있다.

A. 인간의 잃어버렸던 다스리던 권세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히2: 5-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2: 9)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뒤에 창조물을 지배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축복해 주셨다 (창1: 26-31).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라" (창1: 28)

하나님은 인간을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의 말씀과 같이 열등하게 보이나 그러나 천사보다 더 높은 영광을 누릴수 있는 특권을 인간에게 주셨다.
결국 천사는 장차오는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히2:5).
그런데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피조물에대한 지배권을 박탈당했다.

이같은 인간이 직면하고있는 딜렘마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예수를 보니” (히2:9)의 말씀이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이제 인간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받아 예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회복하게 된다.
만약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인간 최대의 딜렘마인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B. 많은 아들을 이끌어 휴거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히2: 10-13)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2: 10)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마지막 아담이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구원의 주 (Captain of Salvation)즉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개척자(pioneer)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실 때 모든 영광을 포기하셨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 하셨을 때에 영광을 다시 회복하셨다.
그리하여 자기를 믿는 자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온전케 하셔서 영광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이제 교회는 주님이 오실 때 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C. 사탄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시기 위하여
(히 2: 14-16)

“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2: 15)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천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오셨다. 즉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혈육을 입고 오셨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2: 16)

또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자 마귀를 무찌르기 위해서 오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2:14)

이 구절에서 사탄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로 나온다.
사탄은 사망의 저자(요8:44)이며,
살인자(요8:44)이며,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죽기를 무서워하는 공포(히2: 15)를 사용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무장을 해제시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도록 이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오셨다.

D. 믿는자들에게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기위하여 (히2: 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는 자비하시고
하나님께는 충성된 대제사장이시다.
대제사장은 우리들이 시험받을 때 범죄하지 않도록 은혜를 주셔서 능히 이기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들이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하나님 앞에서 대언자로서 우리들을 변호하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2:1)

E.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기 위하여 (히2: 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영물인 천사는 육신의 고난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연약함과 필요한 것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신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같이 배고품, 목마름, 피곤함등 육체적 고난을 다 겪으셨다.

예수님의 두가지 대제사장의 사역과 대언자의 사역은 현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치명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역이된다.
이 두사역으로 우리들의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7: 24-25)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권면하고있는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의 말씀에서 마지막 때에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의 사건이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때문에 저주받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지게 된 사실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아지기 때문이다.  

결론.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교회는 말씀에서 떠내려가면 안된다.
만약  그렇게되면 말씀이 육신이되어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흘러 떠내려가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1.인간의 잃어버렸던 다스리는 권세를 다시 회복하시고
2.많은 사람들을 휴거의 영광에 들어가도록 하시고
3.사탄의 무장을 해제시켜 우리들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시고
4.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의 사역으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시키시고
5.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주셔서 그의 영광에 참예토록 준비시키고 있다.

휴거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주님의 말씀사역을 통해 장차 이 땅에 임하는 무서운 7년 환난을 피하여 공중으로 휴거되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원드린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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